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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월선(田月仙) CD 앨범 코리아 가곡집 고려산천 내 사랑 · 임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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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려산천 내 사랑(高麗山河わが愛) Love of the Country
노광욱 작사작곡
남이나 북이나 그어디 살아도 다같이 정다운 헹제들 아니련가
동이나 서이나 그어디 살아도 다같이 정다운 자매들 아니련가
산도 높고 물도 맑은 아름다운 고려산천 내 나라 내 사랑아
남이나 북이나 그어디 있어도 다같이 지내온 겨레들 아니련가
동이나 서이나 그어디 살아도 다같이 지내온 겨레들 아니련가
산도 높고 물도 맑은 아름다운 고려산천 내 나라 내 사랑아
동경에서 태어난 전월선(田月仙)은재일 교포2세. 1985년 북한 평양 에서, 1994년에는 한국 서울에서 공연하여 처음으로38도선양측에서 무대에섰다. 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나라로 보는 그녀에게는 북과남은 같은 조국이였다. 그러나동시에 분단국가의 현실을 느꼈다.
그럴때 그녀는 서울에서 「고려산천 내 사랑(高麗山河わが愛)」이란 노래와 만나게된다. 이 노래에 공감한 그녀는 일본에 돌아온후 리사이틀과 콘써트에서 반드시 이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를 처음으로 들은 많은 재일 동포들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아무도 이 곡의 작가를 몰랐다. 어느날 전월선에게 한통의 편지와 악보가보내왔다. 보낸사람이야말로「고려산천 내 사랑」의 작곡가였다.
그는 재미교포 치가의사 노광욱(盧光郁). 1918년 남포에서 태여나 서 울에서자랐다. 식민지시대는 음악가로서 활동했으나 조선전쟁이끝난해 남북의 대립을피하여 미국으로건넜다. 그러나몸은 미국에 옮겼으나, 머리속에는 한반도로 가득한 채,어느날 [고려 산천 내사랑]을 단숨으로 지어냈다. 그의력사도 한반도분단의력사 그데로였다 전월선은 미국공연에서 [고려산천 내사랑]을불러 워신통에 사는 작가의 집을방문하여 감동적 인 첫만남이 실현되였다.
이모습은 일본의TV인기프로[치쿠시 테추야(筑紫哲也) News 23]에서 3차례에걸쳐 방영되여 일본사회를 큰감동으로 휩쌓였고 동포사회에서는 민단과 조총련양쪽 에서 그녀가노래하는모습에 모두 감격의눈물을흘렸다.
한국에서는1996년KBS TV 일요스페셜 추석특집 [전월선2년반의기록-고려산천을 찾아서]라는 프로로 방영되여 큰 반응을 일으켰으 며 긴 세월 동안 알려지지않은 노래를 마침내 한국 청중의 앞에서 부를수 있는 날이 왔던 것이다.
그해KBS「새해맞이 열린음악회」, MBC 「한마음음악회」등의 프로와, 한국각지 연 주회 에서도「고려산천 내 사랑」을 불러. 재일교포, 재미교포, 그리고 500만명이나되는 해 외 교포의 마음을 본국의 사람들에게 호소하게 된 것이다.
2 임진강 (림진강 臨津江)
박세영 작사 고종환 작곡
임진강 맑은물은 흘러흘러 내리고 뭇새들 자유로이 넘나들며 날건만
내고향 어머니품은 가고파도 못가니 임진강흐름아 원한싣고 흐르느냐
남북을가리는 38도선 을 흘러내리는 임진강에 분단의아픔을 담아 노래한 북한의명곡.
남과북 양쪽에 혈육이있는 전월선은 남북통일의 념원을 담아 데뷰당시부터 독창회나 콘서트등 여러 무대에서 이노래를 계속 애창해왔다 .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알리는 일본TV 뉴스 프로에 전월선이 생방송으로 출연하여 [임진강]을 불러 큰화제를 모았다. 일본에서는 북한노래중에서 유일하게 알려진노래로써 일본인이나 재일조선인가수들이 [임진 河]등 여러 제목으로 부르고있으나 북한에서는 [림진강]이라 표기함. 본래가사에서는 ″내고 향 남쪽땅 ″ 이라는 부분을 전월선은 조선학교시절부터 데뷰후에도 부르기익숙된 ″내고향 어머니품은 ″ 이라부르고있다.
3 그리운 금강산
한상옥 작사 최영섭 작곡
누구의 주제런가 맑고 고운산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그몇해 오늘에야 찾을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비로봉 그봉우리 예데로인가 흰구름 솔바람도 무심히가나
발아래 산해만리 보이지마라 우리다 맺힌원한 풀릴때까지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가본지 그몇해 오늘에야 찾을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금강산은 해외에사는 교포들에있어서도 한번은가보고싶은명승이다.
4 아리랑
민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고개를 넘어간다
나를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
청천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엔 말도많다
노다가소 노다가소 저달이지도록 노다가소
수많은 아리랑중에서도 일본에서 가장알려진 선률.
아리랑은 어디에도없음으로 누구나가 가 지고있는 마음속의 고개인가...
5 봉선화
김형준 작사 홍난파 작곡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모양이 처량하다
길고긴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젓다 네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꾸는 너의혼은 옛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1942년 일본식민지시대에 일본음대를졸업한 김천애가 히비야공회당에서 봉선화를 불렀던 이야기는유명하다.
봉선화는 지금도 여러나라에 사는 동포들과 가수들속에서 불리우고있으나 대부분이 부르기쉬운 8분의6박자로 편곡되여불리우고있다. 전월선은 원곡그데로인 8분의 9 박자로 부르면서도 독특한 호소력으로 청중을 압도한다
6 긴 아리랑
민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넘어 간다
아리랑 고개로 정거장을 짖고 님 오시기만 기다린다
만경창파에 둥실 떠도는 배야 거기 닿주어라 말 물어보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다 주소 수많은 아리랑중에서도 고도의 가창기술이요구되는 곡.
본래민요창법으로 불리우는게 많지 만 서양발성법을 가미한 전월선의 이 록음은 매우 드문 것이며 애수와 박력의 신기한 조화 를 이루고있다.
7 상록수
김민기 작사작곡
저들에 푸르른 솔잎을 보라 돌보는 사람도 하나 없는데
비바람 맞고 눈보라 쳐도 온누리 끝까지 맘껏 푸르다
서럽고 쓰리던 지난날들도 다시는 다시는 오지말라고
땀흘리라 깨우치리라 거치른 들판의 솔잎되리라
우리들 가진것 비록 적어도 손에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8 아침이슬
김민기 작사작곡
긴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이슬처럼
내맘에 설음이 알알이 맺힐때 아침동산에 올라 작은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김민기작품은 재일동포속에서도 인기가있으며 전월선은[아침이슬]이 한국에서 금지곡으로 지 정되여있던시기 일본에 부활시켰다.
전월선 라이브
전월선은 데뷰당시부터 일본에 한국노래를 소개해왔으며 일본의평론가들은 "코리아 가곡이 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은 레벨로 소개된것은 그녀의 리사이틀이 시초이다. " 라고평했다.
아래의 4곡의록음은 그중에서도 일본에서의 초기의 리사이틀에서 불린 귀중한 기록이다.
9 능수 버들(LIVE version )
민요
천안도 삼거리 능수나 버들은 제멋에 겨워서 축늘어 져구나
능수나버들이 꺾어를지면 이몸도 서러워 늙어만가누나
삼가나 협천에 머루나 다래는 제철을 만나서 익어만 가는데
무심한 봄바람 날속여 놓고 이별이 서러워 몸부림 치누나
10 가극[심청전] 중에서 심청의 아리아 효성의노래 (LIVE version )
김동진 작곡
아버지 듯조시요 자로는 현인으로 백리에부미하고 순의딸 제영이는 낙양옥에 갇힌 아빌의해 몸을팔아 속죄하고
말못하는 까마기도 공공림 저문날에 반포를할줄아니 하물며 사람치고는 미물만못하리까
다 큰자식 집에있고 앞못보는 아버지가 밥을빌러 다니시면 남이 욕도할것이요
바람불고 날치운데 천방지축 다니시다 행여 병이날까 염려오니 그런말씀 마옵소서 그런말씀 마옵소서
11동심초(LIVE version )
김안서역시 김성태 작곡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지고 만날날은 아득타 기약이없네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바람에 꽃이지니 세월덧없어 만날날은 뜬구름 기약이없네
무어라 맘과맘은 맺지못하고 한갓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12 아리랑(LIVE version )
민요
13고려산천 내 사랑 Love of Country (高麗山河わが愛) 보나스트랙 CD Document
작곡가와의 만남(일본테레비나KBS 일요스페셜전월선2년반의기록-고려산천을찾아서-에서방 영 된 미국공연의 명연주를수록 작곡가 노광욱씨와의 첫만남과 소리가 수록된 귀중한기록.)
영화감독 이규형 <코리아가곡집>
왜 전월선이 아니면 안되는가?
소학관에서 나온 인물연감엔 일본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이력이 실려있다. 한국인으로 딱 두 사람 DJ와 전월선의 이름이 보인다. 대통령이야 당연하다쳐도 도대체 전월선이 누구길래? 그런 의문은 그녀의 이력을 약간만 풀면 금방 아! 하고 느낌이 온다. 그녀는 도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한국인. 그래서 조선학교를 다녔다. 그녀 의 드라마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고교시절 이미 천재적인 성악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 고 음대진학의 길이 막힌 것이다. 조총련 계통 조선고등학교를 일본 명문대들이 인정하지 않은데서 생긴 일. 이때부터 일본 사회를 뜨겁게 만든 민족적 사건이 일어난다. 많은 경우 같은 조총련 계열인 조선대학으로 진학하는 동료들과 달리 그녀는 투쟁의 길을 택했다.
촉망받는 오페라 가수로서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음대 진학 못하는 이유가 조선인이라는 것 때문이라면 그건 더더구나 용납할 수 없다. 누구 때문에 끌려온 일본이던가. 그녀의 투쟁 은 일개인의 꿈을 이룬다는 차원을 넘어 재일교포 2세들까지 또 다시 역사의 희생양이 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일본 사회를 뒤흔들었다. 그리고 그녀는 당당히 이겼다.
이 소녀는 세 인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 발군의 실력과 치열한 노력으로 일본인 음악 전문가들 모두가 인정하는 TOP 오페라가수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 그녀의 스토리는 그 후 부터가 더드라마틱하다. 북한쪽 공연에서 김일성주석이 그녀의 목소리에 반해 팬이 됐다는 사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그녀는 한국에선 일본문화가 전면금지되어 있던 98년 시점에서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일본어로 무대 공연한 제1호 가수가 됐다. 일본어공연을 금지하고 있는 한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무대였다. 그것은 한국·일본의 문화교류를 그녀로부터 시작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던 것이다.
한국·북한·일본 3국 모두에서 역사성과 드라마를 갖춘 그녀에게 일본은 한국대통령과 같은 비중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있다. 헌데 자칫, 잘못 생각하면 그녀가 사회적인 이유로 스타가 된 것 같지만 천만에다. 단 한 번만이라 도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황활해지고 화사해지고 가슴이 시린다. 오페라 가수가 갖는 풍부한 가창성을 바탕으로 그녀의 모든 노래엔 혼이 담겨있다. 다른 가수가 부르는 똑같은 노래를 전월선이 부르면 청중을 매료시키는 뭔가가 틀린거 다. 해석이 틀리다는 말인데 그건 그녀만이 갖고 있는 인생에도 기인한다.
일본사회에서 일본가수보다 뛰어나려면 몇 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치열감이 그녀의 선천적 재능을 더더욱 빛내고 있다. 그녀의 최고 작품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이 코레이가곡. 특히 북한 가곡의 해석과 표현력에 선 가히 세계 제1인자다. 이제 이런 그녀가 한반도의 새로운 시대를 맞아 가슴으로 코레아가곡을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북한노래 <임진강> 을 비롯해 그녀 에 의해서 발굴되 명곡이 된 「고려산천 내 사 랑」등을 감동으로 몰아친다.
여기에 더해 한국가요의 대표적인 작품인 <아침이슬> 아침이슬을 그녀식의 해석과 그녀식의 스 타일로 전월선 또 다르게 표현하고 있다. 한국엔 조수미가 있지만 일본엔 여기에 비등한 전월선이 있다고 생각하시면 된다.
마침 남북 정상회담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게 된 지금 시점에서 우리가 남북한 최고 명곡들 을 전월선이라는 세계적 가수에 의해 들을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시대의 행복이라 말할 수 밖에 없다.
전월선의 일본·코리아 가곡집에 보내는 말 연출가 木村 應秀
노래는 국경을 넘습니다. 일본과 조선반도(코리아)처럼 가까운 관계가 있는 나라에서는 당연하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민지 지배 이후 부터는 한국에서는 공식적으로 일본어 노래를 금지시켜 왔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에서야 해금이 되었다. 그렇다면 일본의 경우는 어떠한가? 코리아의 노래를 알고 있는가? 엔가와 가요 등은 약간 알려져 있으나, 실은 전통적인 가곡이야말로 일본인의 마음을 흔드는 훌륭한 멜로디가 많이 존재합니다.
오페라 가수 전월선은 일본에서 성악가로서 오페라 무대에 서면서 일관되게 코리아와 일본의 가곡을 불러 왔습니다. 1983년의 데뷰 리사이틀은 “코리아 가곡이 오페라의 아리아와 같은 레벨로 소개된 것은 그녀의 리사이틀이 시초이다. ”라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북의 평양과 남의 서울, 거기에다 LA 등 코리아 가곡을 불러 여러 관객으로 부터 열광을 받은 그녀는, 역사가 만든 희귀한 가수임에 틀림 없습니다. 그 배경에는, 그녀가 동경에서 태어난 재일 한국인 2세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순수한 한국인이 잊었던 코리아 가곡에 대한 마음과 혼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본 가곡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그녀는 1996년 부터 수회에 걸쳐 한국의 리사이틀에서 일본의 가곡을 불러서 한국 사람들을 매료 시켰습니다. 「고향은 일본, 조국은 조선반도」라고 말하는 그녀의 가성은, 남북과 일한의 국경을 넘어 왔습니다. 이렇게 쓰다보니, 활동의 센세이션한 부분만이 주목 받을지 모르겠지만, 이CD를 들으면, 예술가 전월선의 표현력의 풍부함에 놀라실겁니다.
그노래는 때로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강하게 호소하는듯하며, 또 때로는 끊임없는 바램처럼, 우리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습니다. 특히 노래의 절정을 향할 때의 감정 이입은, 다른 가수의 추종을 불허 합니다. “드라틱한 소프라노 ”라는 테크닉적인 표현을 넘는 창조성을 갖는 음악적 해석과 표현력이 있으며, 유명한「아리랑」과 「아침 이슬」도 “전월선”식의 개성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그 열정의 원천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예전 부터 오페라 가수의 꿈을 꾸어온 소녀는 일본의 음악대학의 수험자격이 없다고 문전박대를 받았던 때부터, 싸움은 시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피하지않고, 때때로 부딪치는 난관을 헤쳐나갔습니다. 흔들리지않는 신념과 비범한 집중력으로 오폐라 가수가 되어, 다양한 매력이 넘치는 무대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으며, 분단된 조국의 남북에 까지 그녀의 가성을 들려 주었습니다. 그 천부적인 표현력과 화려한 무대 매너는 국경을 넘어 세계의 관중을 매료시켰습니다.
외국적 음악가로서 문화청 예술제에 처음으로 참가하여 화제를 남겼으며, 예전에 수험을 거부당한 일본의 수도에서 친선대사로서 일한의 노래를 양국에 부르고 있습니다. 이 처음의 앨범은 곡목이 다양하며, 대표적인 가곡과 동요이외에도, 그녀의 독창적인 프로그램에 따른 기존의 가곡집은 색다른 유닉크한 앨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식민지 시대 민족의 노래로서 사랑받았으나, 심한 일본 통치하에서 해금된「봉선화」. 일본에서는 방송 금지가 된 북조선의 노래「임진강」. 남북의 역사의 사이에서 뭍쳤다가 그녀에 의해 발굴되어 한국 수천만의 대중에게 감동을 준「고려산천 내 사랑」. 각각의 노래들은 지금은 거의 불려지지않는 원곡 그대로의 분위기와 해석을 지닌 채, 1999년 현대에 멋지게 다시 살아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임진강」은 훠크쿨세다스가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CD에는 독자적인 해석과 표현력에 따른 것이며, 이 노래는 세계의 어디에 내 놓더라도 빠지지않는 예술 가곡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998년 전월선 자신이, 한국에서 불려지는 것이 금지 되었던 「새벽의노래」을 원곡과는 다른 해석으로 부르고 있으며, 일본과 조선반도의 신시대를 향한「새벽」의 이미지를 주는 명평곡·명창으로 되었습니다. 전월선의 힘 있는 가성은 빛바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비바람에도 꺽이지않고 다시 일어나는 봉선화처럼 조선민족의 고결한 정신입니다. 여기에 수록된 많은 노래는 일한 그리고 남북간의 사이에서 체험해온 이 시대의 가희 나름의 혼의 펼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CD는 지금까지 전월선의 활약을 응원해 온 친구들인 아티스트의 우정어린 연주가 노래를 뒷바침하고 있습니다. 더우기 크래식하며 로만틱한, 그러면서 현대적으로 불가사의하게 융화된 앨범을 만든 것은 큰 기쁨입니다.
Chon Wolson officilal Website www.wolson.com